2020년은 코로나19로 인해 많은 어려움이 있던 반면, 게임 산업 전반에서 큰 변화가 일어난 한 해이기도 했습니다. 지난해부터 전례 없이 심화된 게임 시장의 현황을 살펴보고, 한국 게임사들이 어떠한 방법으로 앞으로의 성장을 꾀할 수 있을지를 짚어보고자 합니다.
팬데믹과 함께 찾아온 격변의 시기
2020년 한국 모바일게임 시장은 4조 원 규모로 19% 성장했으며, 올해 초에도 코로나 등의 영향으로 높은 성장률을 보이고 있습니다. 장르별로 보면, RPG는 2조 원이 넘는 규모로 전체 시장의 과반수를 차지합니다. RPG 장르는 17.4%의 고성장을 유지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사실 리니지2M 런칭이라는 예외를 제외하면 RPG의 성장률은 5.8%로 타 장르 대비 상당히 낮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전 세계 시장은 어떨까요? 작년 한해 전 세계 모바일 게임 시장은 60조 원 규모로 18% 성장했으며, 글로벌 게임사 간 경쟁이 매우 가속화되고 있습니다. 작년 처음으로 수출(게임사가 자국이 아닌 타 국가에서 발생한 매출)이 53%로 과반을 넘어서며 내수(자국의 매출)을 초과했는데, 올해는 59%로 그 경향이 더욱 강해졌습니다. 특히나 중국을 제외한 글로벌 매출 상위 5개국인 미국, 일본, 한국, 독일, 대만은 글로벌 수출 매출의 60%를 차지하며 가장 치열한 격전지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처럼 2020년은 해외 시장에서 신규 게이머를 획득하기 위한 경쟁이 가속화되는 가운데, 특히 한국과 일본에서의 마케팅 경쟁이 가열됐던 한 해였습니다. 특히 모든 국가에서 페이드 마케팅(Paid Marketing), 즉 유저 획득(UA)를 통한 인스톨 비중이 증가했습니다. 글로벌 평균 페이드 마케팅 비중이 13% 증가했고, 한국과 일본은 15%, 20%로 상승폭도 가장 크고 절대량 자체도 글로벌 1, 2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에 따라 상위권 국가들에서는 한 명의 게이머를 획득하기 위한 비용이 나날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작년 한해 동안 설치당 비용(CPI)는 한국은 29%, 일본은 41%나 상승했습니다. 또 한편으로는 경쟁이 치열해지다 보니 유저들의 신규 게임 설치가 많아지면서 대부분의 국가에서 리텐션이 약 10~15% 하락했습니다.
한국에서 경쟁이 심화된 가장 큰 이유는 중국 게임사의 적극적인 진출 때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중국 게임사들의 국내 시장 매출 점유율은 해마다 높아져 2020년에는 국내시장의 약 4분의 1을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한국 게임사들의 점유율은 62%로 낮아졌는데요, 여기서 리니지2M의 작년 매출을 제외한 국내 게임사들의 점유율은 49% 밖에 되지 않습니다. 게다가 작년 국내 시장 성장에 대한 기여도는 중국 게임들이 50%, 한국 게임들이 43%로, 오히려 중국 게임들이 국내 게임 시장의 성장에 더 크게 기여한 것으로 나타납니다. 저희에게는 경종을 울리는 대목일 것 같습니다.
여기서 특히 눈여겨보고 싶은 것은, 중국 게임사가 한국에서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가고 있다는 점입니다. RPG로 대변되는 국내 게임 시장에서 중국 게임사들은 전략, 액션, 어드벤처와 같은 새로운 장르에서 흥행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중국 게임을 플레이하는 유저의 평균 연령도 한국 게임보다 낮고, 모바일 게임을 처음 접하는 유저도 많은 것으로 파악됩니다.
중국 게임들은 수익화 성과도 좋습니다. 한국 시장 내 MAU 규모 상위 100개의 한국 게임과 100개의 중국 게임을 비교해 보면, 한국 게임의 MAU 가 약 2배 더 높습니다. 하지만 매출 규모의 경우, 중국 게임의 평균이 더 좋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구매력 높은 IP 팬이 많은 Top 5 게임을 제외하고 객단가를 비교하면, 오히려 중국 게임들의 평균 객단가가 거의 만원 더 높은 것으로 확인됩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국내 게임사들이 어떤 시도를 해볼 수 있을지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1. 국내 게임 시장의 마케팅 환경 악화에 대응
게임 시장의 글로벌화가 심해지고 있고, 특히 국내 시장의 경우에는 경쟁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습니다. 이 추세가 계속된다면 한국 게임 시장은 앞으로 어떻게 될까요? 여기서 대만 시장의 변화를 눈여겨볼 필요가 있습니다.
대만은 한국보다 한발 앞서서 다국적 게임사들의 경쟁이 심해졌던 나라입니다. 중국 게임사들은 같은 언어권이다 보니 당연히 가장 먼저 대만으로 진출했고, 애니메이션이 가장 보편화된 나라인 만큼 일본 게임사들도 가장 먼저 진출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한국 게임사가 앞서나간 MMORPG의 인기가 제일 많았던 국가도 대만이었죠. 결국 대만은 한중일 3개국 게임사의 해외 진출 시험대가 되면서 UA 경쟁이 극심해졌습니다.
그 결과 대만에서는 CPI가 매우 빠르게 상승했습니다. 또한 더욱 중요했던건 워낙 신작 게임이 쏟아지다보니 높은 CPI에도 유저를 모객하기가 너무나 어려워졌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 마케팅에서도 단가보다는 유저 볼륨이 매체 선정에 가장 중요한 척도가 되었습니다. 한국도 이러한 경향을 보이기 시작했고, 앞으로 중국 게임사들의 RPG 출시가 더 많아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습니다.
대만처럼 국내 시장도 모객이 너무나 치열해지는 상황이 되면 CPI가 상당히 오를 것으로 예상되며, 이러한 환경 변화 속에서 게임사들은 이전보다 훨씬 더 적극적인 투자가 필요할 것으로 보입니다. 유저 획득 단가가 오름에도 불구하고 중소형 게임은 게임을 운영하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유저 볼륨 획득이 여전히 필요하고, 대작 게임은 이전과 같은 대세감을 확보하려면 훨씬 더 치열한 경쟁을 이겨내야 하기 때문입니다.
2. 글로벌 시장을 위한 하이브리드 장르 개발
작년 글로벌 시장에서는 새로운 시도를 했던 하이브리드 장르가 유저들에게 높은 호응을 얻었습니다. 아래 차트는 장르별로 작년 한 해 글로벌 게임 시장의 매출 기여도를 보여주는 그래프입니다. 한국 게임사의 주력 장르인 RPG의 성장이 3.3%로 크게 둔화되었고, 대신 어드벤처, 전략, 액션 등과 같은 장르들은 9%~17%로 높은 성장 모멘텀을 보입니다. 그리고 그 배후에는 ‘원신’, ‘명일방주’와 같은 게임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단순히 이러한 전략/액션 장르에서의 모멘텀뿐만 아니라 장르를 혼합한 하이브리드의 성장이 눈에 띄는 한 해였습니다. 아래처럼 출시된 지 1년이 채 안 되는 신규 게임 중에 매출 성장률 상위 30위권 게임들을 보면 거의 절반이 하이브리드 장르 게임들입니다. 왜 이런 변화가 나타날까요? 더 이상 차별화할 수 있는 여지가 줄어드는 환경 속에서 더 많은 유저와 매출을 확보하기 위한 생존 전략으로 해석됩니다.
하이브리드 장르 개발은 게임사에게 비즈니스 모델과 유저 측면에서 확장의 여지를 제공합니다. 인앱결제와 광고 비즈니스 모델을 혼합해 기존의 과금 유저 매출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무과금 유저로부터도 추가적인 매출을 유도할 수 있습니다. 또한 특정 장르의 전통적인 게임 플레이에 싫증이 난 게이머들에게도 새롭게 어필할 수 있고 UA의 타겟이 되는 유저 풀을 넓힐 수 있어 조금 더 탄력적인 마케팅 운영이 가능합니다.
3. 해외에서 호응 받을 수 있는 RPG를 기획/개발
글로벌 시장을 놓고 보면 RPG에 집중하는 것은 좋은 전략이 아닐 수 있습니다.
하지만 RPG에서 수십 년간 노하우를 쌓아왔고 고퀄리티 게임 개발 역량이 높은 우리 한국 게임사들이 RPG를 포기하고 다른 장르만 개발한다는 건 현실적으로 어려운 선택일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처음 기획 단계부터 글로벌을 염두에 두고 RPG를 개발하는 것은 어떨까요?
RPG는 기본적으로 캐릭터에 대한 애정을 키워나가는 게임입니다. 저희가 최근 진행한 해외 유저에 대한 한 조사에 따르면 미국 MMORPG 게이머들은 게임을 플레이하는 이유로 ‘높은 자유도’, ‘성장과 강화’, ‘창조적 재미’를 꼽았습니다. 그에 비해 한국 게임은 캐릭터에 대한 애정을 키우는 방법이 성장과 강화, 즉 남보다 세지는 것에만 집중돼있죠.
글로벌 시장 유저를 염두에 둔다면, 자유도 높은 모험과 스토리, 그리고 창조적 재미를 성장만큼 중요한 요소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예를 들어 한국 MMORPG는 초반부터 스토리와는 크게 상관없이 성장에만 초점을 맞춰서 자동 퀘스트와 요일 던전을 무한 반복하며 진행해나가지만, 글로벌 유저들에게는 게임 초반 자유도 높은 싱글 플레이를 통한 세계관 경험 및 탄탄한 스토리와 엮인 퀘스트 등 캐릭터에 대한 애정을 키우는 과정이 더 많이 필요할 것입니다. 또한 자동전투보다는 오픈월드에서 구석구석 다녀보고 모험하는 재미, 자동 퀘스트보다는 퍼즐을 결합한 퀘스트 같은 근원적인 게임성에 대한 고민을 해봐야 할 것이고, 또는 던전이나 재화 종류처럼 게임의 복잡도를 줄이는 등 초기 개발 단계부터 다르게 접근할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애초에 기획/개발 단계부터 ‘젤다의 전설’, ‘몬스터헌터’ 같은 재미를 주는 콘솔 게임을 만든다고 생각하면 현재의 한국형 MMORPG와 매우 다른 접근이 필요합니다.
한편 서구권 국가에서 성공한 한국산 RPG 게임을 보면 국내 Top 게임과는 다소 다른 양상을 보입니다. 웨스턴 판타지 풍의 MMORPG보다는 애니메이션 풍의 미드 코어 수집형 RPG의 비중이 높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특히 아트풍 측면에서 보면 한국은 언리얼엔진 등 3D 실사에 가깝지만 마법이나 검기 등 특수 효과가 있는 ‘Stylized Realism’의 비중이 57%를 차지하는 반면, 서구권 시장에서는 이러한 디자인의 게임은 15%에 지나지 않고 오히려 일본 애니메이션 또는 만화 느낌의 아트풍이 전체의 64%로 주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글로벌향 RPG를 개발할 때에는 장르 뿐만 아니라 디자인에 대해서도 국내 시각을 벗어난 고민이 필요합니다.
비즈니스 모델에 대한 고민 또한 중요합니다. 한국의 고관여 유저는 게임을 다운로드하면 일단 거금을 결제하고 시작하는 경우가 많고, 수만 원 이상의 스타터 패키지를 이용하는 것이 보편화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서양의 유저는 게임을 좀 더 오래 해보고 결제를 시작하는 성향이 있기 때문에 저가 상품을 적시에 자주 노출하게 됩니다. 이렇듯 게임의 전반적인 영역에서 해외 시장 유저의 특성을 충분히 이해하고 개발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4. 크로스 플랫폼 공략
한국 게임사가 서구권 시장을 공략하고자 한다면 게이머를 라이트와 하드코어로 명확히 구분해서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 이유는 아시아 유저들의 경우 MMORPG 등 하드코어 게임을 모바일에서 플레이하는데 익숙한 반면 서구권에서는 라이트한 게이머는 모바일, 하드코어한 게이머는 PC 및 콘솔로 구분되는 경향이 매우 강하기 때문입니다.
서구권 유저들이 모바일 게임에 대해 라이트하고 캐주얼한 게임을 기대하는 것은 가장 선진국인 미국조차도 모바일 통신망이 한국만큼 발달되어 있지 않고, 이미 콘솔 보급률이 높은 나라이기 때문에 굳이 하드코어 게임을 컨트롤이 불편한 모바일로 해야만 할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로 인해 실제로 서구권 유저들은 모바일 게임의 세션 시간이 짧은 것을 선호하는데, 이는 한국형 MMORPG와는 상당히 다른 양상임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PC/콘솔 유저를 성공적으로 공략하기 위해 크로스 플랫폼 게임이 최근 화두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최근 몇 년간 모바일게임 업계에서는 PC/콘솔에서 성공한 IP를 모바일로 이식하며 기존 하드코어 유저들을 모바일로 진입시키는 많은 성공 사례들이 있었는데요, 특히 서구권에서 성공 가능성이 낮은 MMORPG 장르인 ‘검은 사막’이 글로벌 시장에서 큰 성과를 얻은 것도 PC에서 성공한 IP라는 점이 주요 요인 중 하나일 것입니다. 하지만 이제 대부분의 IP들이 모바일로 이식되면서 아예 처음부터 크로스 플랫폼으로 게임을 개발하는 것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고, 제대로 된 게임성을 갖춘다면 비교적 라이트 게이머 비중이 높은 서구권 시장에서도 PC/콘솔 유저들에게 어필해 ‘원신’처럼 큰 성공을 거둘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5. 신규 게이머 유입을 위한 새로운 IP 개발
최근 몇 년간 한국 게임사의 매출 상위 게임은 IP 기반이고 그 추세가 점점 더 강해지고 있습니다. 이는 당장의 성공 확률을 가장 높일 수 있는 효과적인 전략입니다. 그러나 과거의 IP 위주로 사업을 한다는 것은 현재의 매출 확보를 위해 미래의 성장을 등한시하는 것으로, 매우 위험한 접근이라고 보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중국 게임을 플레이하는 유저들은 한국 게임보다 저연령층 비율이 높고 기존 IP 팬이 아닌 신규 게이머들을 유입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렇게 저연령층 유저가 즐기는 해외 게임들은 몇 년 후 가치 있는 IP로 성장할 것이고 유저들도 과금력을 더 갖출 것입니다. 특히 IP 라이선싱을 할 경우 발생하는 비용을 생각한다면 국내 게임사들도 과거의 IP에 기대는 것뿐만 아니라 신작을 통해 자체 IP를 개발하는 시도를 꾸준히 계속해야 할 것입니다.
6. 성장을 위한 데이터 기반의 의사 결정
지금까지의 내용을 요약하면 마케팅 경쟁 격화로 인해 게임 시장의 유저 획득 비용은 증가하는 반면, 하이브리드 및 글로벌향 RPG 개발, 크로스 플랫폼, 신규 IP 등 대규모의 투자가 필요한 영역은 점점 더 커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투자가 올바르게 결정되기 위해서는 데이터 분석도 훨씬 더 적극적인 형태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유저들의 행동과 관련한 빅데이터 수집 및 분석, 그리고 이를 기반으로 머신러닝을 통한 예측까지 통합적인 관점으로 데이터를 설계, 분석, 활용할 수 있어야 하며, 이를 위해 Google은 Firebase라는 도구를 통해 게임사들의 성공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좋은 콘텐츠는 언어나 국적과 상관없이 많은 사람들을 끌어들입니다. 특히 한국의 콘텐츠는 BTS나 기생충이 큰 인기를 끌었듯이 글로벌 시장에서도 충분히 경쟁력이 있습니다.
한국 게임 산업은 백지상태에서 시작해 지금까지 장인 정신으로 무장한 많은 분들이 여기까지 이끌어 왔습니다. 이러한 장인 정신과 비즈니스 마인드가 합쳐진다면, 코로나 이후에 변화가 큰 게임 시장에서도 한국 게임사가 해외 게임사에 비해 두각을 나타낼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한국 시장에서 실행해 온 성공 방정식이 아닌, 글로벌 시장에서도 통하는 성공 방정식을 개발하고 적극적으로 실행한다면, 한국 게임사가 글로벌 강자로 약진할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