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으로 우리가 창의적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특별한 능력을 갖고 있는 걸까요? 디지털 시대는 한 사람이 제한된 범위없이 무한대로 자신의 영향력을 확장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합니다. 변화무쌍한 현 시대에 광고인이 가져야할 자세와 관련해 TBWA의 박웅현 최고 창의력 책임자(CCO)님의 생각을 공유합니다.
저는 신문방송학과 출신입니다. 아마도 대중에게 개인적인 글과 생각을 널리 전달하고 싶은 마음에 관련 전공을 선택하게 된 것 같습니다. 이후 저는 신문사와 방송국 시험에 응시했지만 실패하였고, 이후 광고회사에 합격하게 됐습니다. 제가 광고업계에 입문한 후 가장 놀랐던 사건은 2002년 미선・효순 사건으로 촉발된 최초의 촛불집회를 경험하고 난 뒤였습니다. ‘촛불을 준비해주십시오. 저 혼자라도 시작하겠습니다’ 라는 한 사람의 짧은 글로 시작된 촛불 집회는 이후 2016년 대한민국이 촛불 하나로 국가의 통수권자를 끌어내린 초유의 사건의 단초가 되기도 했습니다. 오늘날 개인의 영향력은 스마트폰이라는 강력한 미디어 툴을 바탕으로 그 어느 때 보다도 더 커지고 있습니다.
해군과 해적과 대결, 의외의 승자
몇 년 전 레미제라블이라는 영화가 개봉했을 때 저희 팀에서 바이럴 영상을 제작했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 공군홍보단에서 ‘레밀리터리블’이라는 레미제라블 패러디 영상을 만들어 유튜브에 업로드했습니다. 동영상은 영화 OST 음악에 맞춰 공군 22전투비행단 장병들이 활주로에서 눈을 치우는 내용을 담고 있었습니다. 이 비디오는 우리가 만들었던 바이럴 영상의 조회 수보다 몇 배 높은 수치를 기록했습니다. 우리는 프로였고 그들은 아마추어였는데 우리가 완벽하게 패배한 것입니다.
과거 두 여자 연예인의 반말 논쟁, “너 어디서 반말이니?”, “언니는 저 마음에 안들죠?”라는 말이 화제가 된 적이 있었습니다. 관련 뉴스가 나온 다음날 한 치킨회사는 빠르게 동영상 광고를 제작해 배포했습니다. 이 영상은 “너 어디서 반 마리니?”, “아니 아니, 치킨은 한 마리지”라는 단순한 대화만을 담고 있었습니다. 사실을 확인해 보니, 업체에서 그 뉴스가 나오자마자 을왕리에 여성 두 분을 급하게 섭외해 간단한 촬영 기구로 촬영해 업로드했다고 합니다.
공군 홍보단과 치킨 광고를 찍은 이들을 해적으로, 신문사 방송국 광고회사 등 전문직 종사자들을 해군으로 비유한다면, 우리는 현재 해군 보다 해적이 지배하는 시대에 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기존 시스템에 의존하는 해군은,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싸우는 해적들을 쉽게 이길 수 없습니다. 해군은 전투를 위해 복잡한 명령체계를 거쳐야만 출병할 수 있지만, 해적은 “가자!”라는 선장의 한마디면 바로 진격할 수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가능한 이유는 그들에게는 용기가 있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창의성의 역사는 ‘용감한 사람들의 역사가 아니었나’라는 그런 생각도 듭니다.
1. 창의성은 용감함의 역사
멍게를 먹다가 문득 궁금증이 떠올랐습니다. 과연 누가 인류 최초로 멍게를 먹어봤을까요? 생긴 모양이 흉측해 마치 독이 있을 것 같은데 누군가 용기를 내서 처음 먹었기 때문에 멍게가 식용으로도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게 됐을 것입니다. 이처럼 누군가의 용기가 없었다면 멍게라는 해산물은 우리 식탁에 올라오지 못했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여러분이 의사라고 한번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의사는 아픈 사람들을 치료하는 직업입니다. 그런데 종두법을 발명한 ‘에드워드 제너’는 우연히 우두에 걸린 소젖짜는 사람들이 천연두에 걸리지 않는다는 사실 알게됐습니다. 그는 이를 기반으로 소의 우두 고름을 인간에게 주입해 아프게 만들어보자는 생각으로 천연두 치료법을 발견했습니다.
대부분의 창의적인 생각들은 처음에 대중들에게 충격을 안겨줍니다. 만약 우리가 에드워드 제너였다면 이러한 행동은 당시 의사 면허증이 박탈당할 수도, 살인자가 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분명 제너에게 용기가 없었다면 천연두는 더 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갔을 것입니다.
저는 32년간 이 업계에 있으면서 ‘창의성은 행동하는 힘’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개인적으로 창의성의 반대말은 ‘안전성(Safety)’이라고 생각합니다. 안전한 것은 언제나 전혀 새롭지 않다는 것을 뜻합니다.
2. 창의성은 행동하는 힘
제가 꼭 여러분이 기억해줬으면 하는 이름 하나를 알려드리겠습니다. ‘뿌리깊은 나무’라는 잡지를 창간하신 '한창기'라는 분입니다. 그는 대한민국 정신사에 한 획을 그으신 인물입니다. 당시 지식인들이 보던 잡지는 전부 세로쓰기로 출판됐고, 주로 한문으로 작성되는 것이 관례였습니다. 하지만 한창기 선생은 뿌리깊은 나무에서 가로쓰기와 한글을 고수하는 파격적인 행보를 이어나가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실행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더 이상의 창의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애플의 ‘스티브 잡스’를 한마디로 ‘혹독함’이라는 단어로 표현하고 싶습니다. 혹독함과 엄혹함의 시간을 통해 애플은 창의적인 기업의 아이콘으로 사람들에게 기억되는 브랜드가 되었습니다. 때문에 저는 창의적인지 아닌지 여부는 혹독함이라는 단어를 사용할 수 있는지의 여부에 달려있다고 믿습니다.
역대 한국인 중 가장 존경하는 한 인물을 선택하라면 저는 주저없이 세종대왕을 꼽습니다.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할 때 온 국민의 환영을 받았을까요? 서울 불광동에 위치한 진관사라는 사찰에는 한글 창제에 활용된 독서당과 비밀연구소가 있습니다. 한자를 숭상하는 사람들과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의 반발 등으로 인해 연구를 비밀로 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세종은 한글 창제 완성을 위해 ‘통촉하옵소서 마마’라는 수많은 반대 상소문을 정면으로 돌파해 나갔을 겁니다. 이처럼 창의적인 사람들은 대부분 용기가 있거나, 남이 해보지 않은 것을 두려운 없이 시도하는 사람들입니다.
창의력은 발상의 문제가 아닙니다. 한 사람의 태도에 달려있고, 용기가 수반돼야만 이뤄낼 수 있는 명제입니다. 이것이 없다면 우리는 루저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세상에는 두 가지. ‘현실화된 아이디어(realize idea)’와 ‘현실화되지 못한 아이디어(unrealize idea)’ 두 가지 아이디어만 존재합니다. 무언가를 생각을 한 다음, 추진력 있게 실행해 나가는 것이 바로 창의력이라고 생각합니다. ‘T.S 엘리엇’은 “구상과 창조 사이에는 그림자가 드리워진다. 그 그림자를 걷어내라”라는 얘기를 했습니다. 발상을 한 다음에 실행해 나가는 과정에는 언제나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그 그림자를 걷어낼 수 있는 사람들이 창의적인 사람들일 것입니다. 이같은 사람들이야 말로 용기가 있는 사람들이고, 해적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아닌가라고 생각합니다.